‘그것에다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것을 창조함과 동시에 거머쥐는 것이다.’ -사르트르
우리는 애정 하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인다. 이름 붙여진 생명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다. 호명되고 또 호명되어지며 그 이름에 합당한 운명을 살아낸다. 어쩌면 세상은 호명되어지기를 기다리는 이름들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키우게 된 반려동물을 막 안고 동물병원에 찾아갔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아이 이름이 뭔가요?“
만난 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는 아이에게 아직 이름은 없고, 난처해하는 보호자에게 간호사는 능숙히 조언한다.
“일단 적어주시고 나중에 바꾸셔도 되요.”
SNS 스타가 된 유기견 철수의 이름도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샤넬이라는 턱시도 고양이를 키우는 한 보호자는 자신의 고양이와 만나기 전날 애인에게서 받은 샤넬쇼핑백의 블랙&화이트 톤이 떠올라 샤넬이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바꿀 생각이었지만 한 번, 두 번 호명되어지기 시작하며 아이들은 철수가, 그리고 샤넬이가 된 것이다.
동물병원에 오는 개와 고양이의 이름 중 많은 경우가 첫인상에 따라 붙여진 이름들이라고 한다. 흰둥이, 까망이, 백설이, 바둑이, 백미…트위터에서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약밥이(치즈냥)와 임자(턱시도냥)는 영양이 듬뿍 담긴 약밥과 검은깨로 만든 흑임자 떡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명 랜선 이모들은 약밥이나 흑임자떡을 식탁에서 마주치게 되면 ‘약밥아~임자야~’ 라며 아이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name2.jpg▲ twitter@ssugnang 쌍둥이 친형제 약밥이와 임자
품종에 관한 이름도 많다. 노르웨이 숲 품종의 고양이의 경우 숲이, 슈나우저 중에는 ‘슈나, 코커스패니얼 중에는 ’코코‘가 많다. 촉감이 좋아 붙여진 이름들도 있다. 포근이, 말랑이, 모찌가 그에 해당된다.
스스로를 ‘애완동물 중독’이라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던 구혜선의 반려동물 이름은 순대, 감자, 밥, 땅콩, 만두, 군밤, 꽁치까지 모두 음식이름이다. 이유인즉슨 먹는 것으로 이름을 지으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들었다며 이름에 얽힌 비화를 밝혔다.
goyang (519).jpg▲ 노르웨이 숲 품종의 이 고양이 이름은 ‘숲’이다.
부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대박이, 돈방석, 로또, 이억이라 짓기도 하며 아이와 자신의 건강을 기원하며 튼실이, 장수, 건강이라 이름 짓기도 한다.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의 저자인 이원영 수의사는 기억에 남는 이름으로 ‘쓸개’라는 고양이를 꼽았다. 이상하게 들렸던 이름이 알고 보니 담낭절제술을 받은 보호자가 고양이를 입양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젠 내게 없어졌지만, 너는 나에게 새로운 쓸개가 되어주렴’이란 의미로 쓸개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사연을 듣고 놀랐다고 밝혔다.
한편 ‘김재규’라는 이름의 고양이도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언가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었으나, 알고 보니 노량진에 있는 ‘김재규 경찰학원’ 근처에서 구조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올림픽 전후에 입양된 아이들 중에는 금동이, 은동이, 동동이가 많고 사강이, 슛돌이 등 월드컵에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 사람들도 있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만나서 ‘미세’와 ‘먼지’,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 태어나서 ‘천둥’과 ‘번개’, 쌍꺼풀 수술을 한 뒤 ‘눈이 참 예뻐졌구나’라는 말을 처음 듣던 날 입양이 되었다고 해서 ‘니눈이’라고 이름을 짓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부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네이년’ 이나 ‘이노미’ 같은 이름도 있다고 한다.
많은 동물병원의 간호사들이 차트에 등록하기 위해 반려동물의 이름을 묻는데 대답하기를 서로 미루는 여러 보호자의 귀여운 사연들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보호자는 자꾸 ‘밤의 분노 반’이라 얼버무렸다고 한다. 도대체 이름 같지가 않아서 ‘네? 써주실래요?’라고 했더니 “그럼 그냥 ‘반’이라고 해주세요.”라 말했단다. 알고 보니 이름의 사연인 즉슨 보호자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의 주인공 이름. 하지만 “밤의 분노 반이 어디가 아픈가요?” , “밤의 분노 반이 약을 먹고 혹시 구토를 하지 않았나요?” 범상치 않은 이름때문에 진료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며 해프닝을 털어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에서
하나의 생명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지든 끝까지 한 보호자에게 호명되어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불행이’라 불리어도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from 한국애견신문, 원문보기